[책] 잔디와 발자국 (이종혁)

2024. 12. 19. 23:14문화,책 그리고 나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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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디와 발자국.

나는 지금 카사블랑카에 있어. 가난한 주제에 시내 중심가에 있는 오성급 호텔에 묵고 있어. 평소의 나라면 절대 가지 않을 비싼 호텔이지만, 온종일 가난과 죽음을 생각하다 보니 비싼 자리에서 죽고 싶다고 생각했어. 그래서 뭐에 홀리듯 들어오고 말았지.
저녁에는 호텔 방에서 맥주를 마셨어. 13층 높이의 창틀 위에서 춤을 췄지. 음악은 없었어. 그저 에어컨 바람으로 커튼 날리는 소리에 맞춰 춤을 췄어. 두 번 정도 떨어질 뻔했지만 그래도 아슬아슬하게 계속 춤을 췄지. 멈출 수가 없었어. 그저 몸과 마음이 시키는 대로 몸을 흔들었어. 나는 춤을 췄다고 생각하지만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는 몸만 흐느적거리고 있는 사람처럼 보였을거야. 이대로 떨어져도 상관없다고 생각한 거 같아. 그래서 멈추지 못했어. 떨어질 때까지 춤을 췄지. 하지만 결국 나는 떨어져 죽지 않았어. 죽지 않았으니까 이렇게 너한테 편지를 쓸 수 있었겠지? 역시 죽는 일은 두려운 일이더라. 분명 조금 전까지만 해도 무섭지 않았는데 춤을 멈추고 나니까 공포심이 밀려오더라고. 창틀에서 내려오며 생각했어. 나는 무엇이 두렵고, 무엇이 두렵지 않은걸까... 여하튼 오늘도 이렇게 살아냈어. 다음은 어떤 나라로 가게 될지 모르겠지만 그때 또 편지할게. 안녕. 
-카사블랑카에서
p.21-22
나비는 약한 존재에서 약한 존재로 다시 태어나는 걸지도 몰라. 오늘은 무언가 찾은 느낌이야.
약한 존재는 다시 태어나도 결국 약한 존재가 될 수 밖에 없어. 바뀔 수 없다면 차라리 아름답게 약하고 싶어.
-페루에서
p.29
소설 _ 잔디와 발자국 中 
 

나는 지금 카사블랑카에 있어. 가난한 주제에 시내 중심가에 있는 오성급 호텔에 묵고 있어. 평소의 나라면 절대 가지 않을 비싼 호텔이지만, 온종일 가난과 죽음을 생각하다 보니 비싼 자리에서 죽고 싶다고 생각했어. 그래서 뭐에 홀리듯 들어오고 말았지.

 

이 문구가 너무 마음에 들었다. 이 문장이 너무 좋아서, 이 문장때문에 이 책을 펼치게 되었던것 같다. 
나는 지금 카사블랑카에 있어. 가난한 주제에 시내 중심가에 있는 오성급 호텔에 묵고 있어. 
이 말이 왜이렇게 강렬하게 와닿았을까?
그리고, 별 것아닌 이유로 선택해 읽은 책이라고 생각했는데 거의 대부분의 글들이 다 좋았다.  이종혁 작가의 팬이 될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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