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시간을 쓰고 있습니다

2024. 11. 6. 23:10지극히 사적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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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아시간을 쓰고 있다.

그간 담임만 하다가, 임신과 출산으로 2년 6개월의 휴직을 마치고 복직했을때 비로소 처음으로 비담임을 하게 되었다. 조회 종례를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경험을 처음으로 하게 되었고, 학교의 배려로 육아시간을 쓸 수 있어 오전에는 첫째 유치원 등원준비와 아직 8개월이었던 둘째를 챙기고 부랴부랴 출근해서, 굳었던 머리를 다시 돌리느라 새롭게 업무와 아이들과의 관계에 적응하느라 고군분투하며 또 부랴부랴 퇴근하여 유치원에서 아이를 하원하고, 나를 향해 기어오는 둘째를 안아들고, 먹이고 씻기고 재우느라 수업준비와 업무는 늘 아이를 재우고 난 뒤 한밤중에 잠을 줄여가며 해야했다. 

이정도 힘들어야 비담임을 할 수 있구나... 싶을 정도로 힘든 시간이었다. 개인적으로 힘든 일도 있었지만...학교에 티내고 싶지도 않았기에 학교에서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열심히 하며 워킹맘의 삶을 시작하게 되었다.

하지만, 역시 쉽지 않았다. 업무가?  수업이? 아이를 보는것이? 당연히 쉬운것은 아니라고 생각하고 각오했지만 힘들었다. 그런데 이것들보다 나를 더 힘들게 하는게 있었다. 바로 관리자와 동료교사들의 불만.

왜 육아 시간 쓰는 사람들에게 시간표를 배려해줘야 하나요?
1, 7교시는 누구나 힘든데요? 이건 역차별 아닌가요?
자신의 권리라고 당당히 요구하기보다, 이로 인해 피해받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고 적당히 요구해야하지 않나요?
교직원 회의나 중요 일정이 있을때는 육아시간을 자제해주세요.


이러한 말들을 직간접적으로 접하게 되는 순간들이면, 나는 위축되고 작아졌다. 시간표 배려를 받았기에, 육아시간을 쓸 수 있는 것인데... 육아시간은 나의 '권리'이므로 '당당히' 요구한것이 아니라 학교와 동료교사분들의 '배려'이므로 '감사'한 마음으로 쓰고 있었는데... 1교시와 7교시가 힘들어서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의 등하원 시간과 준비때문에 '할 수 없거나' '하기 힘든 상황'이어서 못하는 것인데... 만약에 육아시간을 쓰지 못한다면, 어린이집은 어떻게든 오전반에 새벽부터 어린 아이를 맡길 수는 있겠으나 아직 두돌도 안된 아이가 아무도 없는 어린이집에서 혼자 친구들 오기 전까지 1시간 넘게 있어야 한다는것... 세돌이 지난 첫째는 유치원을 다니니 일찍 등원을 할 수 없기에 친정엄만, 시어머님, 혹은 등원도우미의 도움을 구해야 하는데, 아빠가 돌아가시고 건강도 많이 안좋아진 친정엄마와 시골 당진으로 내려가신 시어머니께 부탁드릴 형편도 아니거니와 등원도우미는 구하기가 쉬운지? 게다가 들어가는 돈도 돈이고... 그저 힘들어서 안하는게 아닌 이 상황을 모두에게 설명할 수도 없을 뿐더러, 설명하고 이해를 구해도 또다시 "여긴 직장인데 모든 여건을 어떻게 받아주나?" "네 선택으로 낳은 아이 아니야?"라고 말한다면 더는 할말이 없을 것같다. 

역차별... 이말 참 무섭다 .하지만 형평을 역차별이라고 말하고 있는것은 아닐까? 

내 선택으로 낳은 내 아이가 맞기에, 내가 책임지고 어떻게든 방법을 찾아야 하는 것이 맞다. 하지만 아직 유치원이나 어린이집을 다니는 영유아가 있는 부모들이 힘든 사정을 알기에 있는 '육아시간'이라는 제도가 있는 것인데, 그것을 쓰는 것이 이렇게 힘들고 눈치보이는 일이었다니... 그나마 여자가 많은 집단이기에 이정도의 항의가 있는것이지 그렇지 않은 대다수의 회사의 워킹맘들은 얼마나 힘든 상황에 있을까?하는 생각마저 든다. 

솔직한 나의 심정은, 육아시간을 쓸 수 있기에 직장 생활을 할 수 있는 것인데 이 육아시간도 평생 쓸수 있는것이 아니라 쓸수 있는 기간이 (최근 늘려주어 최대 3년)이며, 이도 아이나이 만8세까지만 쓸 수 있다. 그 기간 동안 쓰는 상황도 다들 참아주기 힘든 현실에, 조금... 아니 많이 힘들었다. 

모든 동료 선생님들의 생각이 아닐 것이다. 힘들어하는 나에게 "금방 지나가~ 지금이 제일 힘들때에요. 그래도 아이가 너무 예쁘죠?"라고 말해주는 선생님도 계신다. 그럴때마다 감사하고, 지금을 버틸 수 있는 힘이 생기기도 한다. 

학교에서 육아시간을 쓰는 사람은 절대 소수인데, 다수결로 의견을 모으면 시간표 배려를 받지 못하고, 비담임이 되지 못하고, 결국 육아시간을 내년에는 쓸 수 없을지도 모른다. 

이래서 어린 영유아가 있으면, 복직하면 안되는 것이었다. 집에서 아이를 돌보기만 해야했다. 어린 자녀가 있어 육아시간을 써야하는 나는, 직장에서 환대받지 못한 존재였다. 이래서 다들 아이를 낳지 않는구나, 아이를 낳으면 다들 복직하지 못하는 구나, 그런거구나...하고 아픈 현실을 맞딱들이게 된다.

장애인 주차구역은 역차별인가? 

임산부 배려구역은 역차별인가?

노인의 지하철 무료 이용은 역차별인가?

교내 엘리베이터에서 다치거나 아픈 사람이 먼저 이용해야 한다고 하면, 아프지 않은 사람도 힘들어서 탈 수 도 있는건데 이것 역시 역차별인가?

학급에서 가족을 돌봐야하는 학생이 매번 일찍 가야해서 청소를 하지 못한다면, 담임으로써 공평해야하니 너는 점심시간에 따로 청소해라. 라고 하는게 공정한걸까? 

생각해볼 일이다. 어떤것은 맞고 어떤것은 틀리다고 할 것인가? 

나 역시, 임신, 출산, 육아를 하며 처음으로 집단에서 '소수', '약자'가 되어서야 비로소 그 입장을 이해하게 되었다. 내가 받는 '배려'가 다른 이들에게는 '권리'로 여겨지며, 그것이 공정하지 못하다고 느껴질 수 있다는 것을. 하지만, 소수는, 그리고 약자는, 그것이 권리가 아니라 '생존' 이며 '배려'에 항상 감사함을 느끼고 있다는 것을, 왜 알아주지 못하냐고 말할 수 조차 없다. 다수가 더 힘이 세고, 말소리가 크기 때문이다. 

나는 육아시간을 쓸 수 있을까?

모르겠다. 이런 분위기의 학교라면, 나는 더이상 이 배려를 받지 못할 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아이들의 육아를 위해 나는 어떤 선택을 할 수 있을까. 

내가 더이상 육아시간을 쓰지 않아도 되는 날에, 배려가 필요한 선생님들께 기꺼이 도움을 줄 수 있는 동료교사가 되어야지, 그냥 그렇게만 다짐한다. 

제도는 있지만, 아직 우리들의 인식은 그 제도를 실천하기가 너무 어렵다. 

공평과 형평

각자 사정이 다르기에, 그 사정에 맞춰 조금은 누군가 배려해주고 양보해주면 안되는 걸까? 이건 너무 나의 입장만 요구하는 것일까? 나는 이기적인가? 

다들, 각자의 상황이 힘드니까 여유가 없는거겠지라는 생각도 많이 든다. 모두가 만족스러운 현실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냥, 여기에서라도 임금님귀는 당나기귀라고 말하고 싶었다.

이 공간이 나에게는 대나무숲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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