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4. 1. 16:31ㆍ수학, 그리고 교육
자연수는 일상적으로 생각하기 쉽죠. 물건을 세거나, 눈에 보이는 것들을 헤아리는 것은 누구나 생각할 수 있었으니까요.
수에서 최초의 놀라운 발견은 '0'의 발견이 아니었을까 해요.없는 것을 표현했다는 것 자체만으로, 수학에서는 큰 혁명이었고, 기하급수적인 발전이 있게 되죠.
그 뒤에 음수(-)의 발견이 두번째에요. 없는 것을 표현하는 것을 넘어, 가지지 않은 것들을 헤아리는 상상력이 필요하게 된거죠. 이렇게 자연수와 0, 그리고 음의 정수를 통틀어 우리는 '정수'라는 틀로 묶어서 또 하나의 수 체계를 정의하게 되죠.
자연수의 연산이었던 사칙연산(+, -, ×, ÷)을 정수로 확장해요. 조금 더 전문적인 용어를 쓰자면 형식불역의 원리를 통해서 음수와 0이 포함된 수 체계에서도 할 수 있도록 연산을 정의하고, 계산하는거죠.
여기서, 추가가 되는 수가 생겨요. 1개의 절반. 또는 3개의 음식을 4명이 나눠먹어야 하는 상황에서 정수로 딱 떨어지지 않는 숫자들이 나오게 되는거죠. 1/2이나 3/4같은 숫자말이에요. 이 필요성에 의해 정수가 아닌 숫자가 있음을 알게되고, 이를 표현하기 위한 개념으로 '유리수'의 개념이 추가가 되요. 이 유리수는 정수의 비로써 나타낼 수 있는 수인데, 정수와 정수가 아닌 유리수로 분류되죠. 정수의 개념에서 확장된 수의 체계가 형성된거에요. 유리수라는 수체계를 확립시킨 후, 다시 유리수에서 사칙연산을 해요. 사실 우리가 수를 배워서 하는건 결국 계산이고, 그 계산은 사칙연산인거죠.
다시, 오랜기간동안 이제 우리는 가장 큰 수의 체계가 '유리수'이다.라는 것이 공론화되었어요. 그러던 어느날, 누군가가(수학사에서는 피타고라스 학파의 누군가가)정수의 비로 나타낼 수 없는 수를 '발견'하게 되요. 그리고 큰 혼란을 느끼죠. 유리수가 아닌 수가 존재한다고? 그럴리없어. 그 수가 유리수임을 증명하기위해 애쓰죠. 하지만 정수의 비로 나타낼 수 없는 수, 한 변의 길이가 1인 직각 이등변 삼각형의 빗변의 길이는 도저히 정수히 비로 나타낼 수 없었어요.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2죠. 하지만 그때는 이러한 수를 인정할 수 없었죠. 아마, 0의 발견, 음수의 발견때 느꼈던 그러한 충격이지 않았을까요? 결국,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던 무리수의 존재를, 기득권이었던 지식인층은 일반 시민들에게 숨겼다고 해요. 일반 시민들에게는 우리 세상에는 유리수밖에 존재하지 않는다고 계속해서 주장해왔고, 자신들만이 무리수에대해 연구했던 거죠. 기득권층이 아닌 다른 계층에서 이 사실을 알게된다면, 자신들이 권력을 유지하는데 방해가 된다고 느낀것 같아요. 요즘도 그런경우가 간혹 있죠. 분명 진실이 아닌걸 알고 있지만, 많은 이들에게 그것을 숨기고 있는 경우, 자신들에게 피해가 가게 되는 상황을 막기 위해, 진실을 막아버리는 거죠.
진짜인지 모르지만, 피타고라스 학파에서도 다른 이들에게 무리수의 존재를 말하려는 자가 있었는데 그 사실을 알고 그 사람을 아무도 모르게 없앴다는 썰도 있어요.
하지만, 결국 진실은 밝혀지는 법. 무리수의 존재가 수면위로 드러나게 되요. 사람들 역시, 이를 받아들이기 힘들어했지만 결국 받아들일 수 밖에 없었죠. 왜냐면, 실제하니까요.
우리가 말하는 유리수(rational number, 有理數)는 이성적인 합리적인 수로, 한자뜻을 풀면 헤아릴 수 있는 수로써 정의했었다면 그와 반대되는 수로 무리수(irrational number, 無理數)가 정의되요.
이런식으로 수는 계속해서 확장해 나갑니다. 유리수라는 큰 수 체계에, 새로운 무리수가 등장하면서 유리수와 무리수를 실수(Real numver)라는 수 체계 아래에 두죠. 실제로 존재하는 수라는 의미에서요.
학생들에게 이러한 수체계를 설명하면서 '확장'의 개념과 상태에 대한 언급이 사실, 우리 교실에서는 부족한 것 같아요.
교과서에서도, 자연수 다음에 정수를 배우고, 사칙연산을 하죠. 정수 다음에 유리수를 배우고 사칙연산을 해요.
중3이되면 드디어 무리수가 도입되며 실수 체계가 완성되는데, 이러한 설명중에 수의 확장을 통해 수학자들이 이러한 수의 발견과 체계에서의 확장으로 인해 받았던 충격과 깨달음을, 과연 학생들은 어느정도 이해할 수 있을까요?
같은 충격과 깨달음을 얻을 수 없다면, 이를 처음 발견했던 수학자들에 대해서 한번쯤 생각해볼 수 있는 시간을 줘야하지 않나 생각해봅니다.
저역시, 수업시간에서 실수의 사칙연산의 계산 문제를 풀게 합니다. 하지만, 그 이전에 무리수의 도입을 설명할때
이러한 확장을 통해서 우리가 느껴야 하는것. 알아야 하는것은 꼭 강조하려고해요.
우물안 개구리가 보는 세상, 개구리가 우물을 나와서 보는 세상, 그리고 비행기를 타고 다른 세계에 도착한 개구리가 보는 세상. 그런 식으로 확장된 배경으로 바라보는 시선은 더 넓고, 많은 생각과 통찰을 해야만 한다고. 할 수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러면 아이들은 조금은 이해하는 것 같아요.(몇명정도, 그것도 제 추측입니다...ㅠㅠ)
우리가 계속해서 수를 배우는 이유는 그것이구나, 우리가 알고 있는 세상은 좁고, 내가 경험한 것은 아직 적다고.
더 많은 것을 보고, 경험하고, 세계를 넓혀나가야 한다고 말이죠.
수학을 통해서, 세상을 바라보는 확장되는 눈을 키우기를 바랍니다. 교과서에서도, 수업에서도, 그러한 내용들을 더 많이 담기를 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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